최근 몇 년 사이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기업들이 축산업에 참여해 사료시장은 물론이고 사육, 유통분야까지 빠르게 진출하며 사업을 확장하고 있어, 그동안 타죽종 대비 ‘계열화’ 움직임에 무관심하던 한우농가들도 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게다가 농축협이 생축장의 용도를 변경해 비육우 위주로 출하하거나 위탁사육을 확대해 나가는 데 대한 불만 또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기업의 한우산업 진출과 농축협 위탁사육 확대에 따른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응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대기업 자본, 생산 현장에 투입’소문 파다

하림과 사조, 이지바이오시스템 등 대기업이 축산업에 진출한데 이어 동원그룹이 지난여름 금천을 인수하면서 한·육우산업에 대한 대기업의 진출 또한 가시화된 모양새다. 금천은 30년 이상 된 육가공업 전문기업이지만 동원그룹의 계열사인 동원팜스가 축산농가에 사료를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사료와 축산, 육가공으로 완성되는 계열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한우산업에서 ‘계열화’란 주로 계열주체가 사료나 송아지를 제공하고 농가가 자가 시설에서 사육하는 형태로 이뤄지며 농가는 ‘임금’ 명목의 사육수수료를 받게 된다. 농업부문에서 계열화 사업이 허용된 건 1990년대부터다. 수입개방에 대비해 영세한 농가들로 구성된 우리나라 축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논리에서다. 그리고 2009년 이후 농지법, 축산법 등이 잇달아 개정되면서 대기업이 실제로 축산업에 진입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대기업의 축산진출과 관련해 현장에서 감지되고 있는 움 직임은 기업의 이름을 내걸지 않은 채 대기업 자본이 속속 침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구경북도지회 조용철 사무국장은 “대기업 자본이 폐업신고를 한 농가 개개인에 게 자금을 대출해 주면서 위탁영농 규모를 늘려가고 있는 상황이어서 계속 추이를 지켜보고는 있지만 법적으로 제제할 수 없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한우농가들은 ‘○○지역에 몇 ○만두의 소를 키우고 있는 농가가 있는데 주변 평가로는 그만한 여력이 없다며 ○○그룹에서 자본을 대고 있다’거나 ‘○○그룹이 ○○영농조합법인 이름으로 한우를 대규모로 사육하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농가들은 ‘확실한 물증을 댈 순 없지만’ 이처럼 위장형태로 한우산업에 침투한 기업자본이 상당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FTA나 TTP보다 더 무서운
대기업 자본 진출

‘한우산업에 대기업의 진출을 반대한다’고 했을 때 농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보기에 단순한 ‘규제’나 ‘밥그릇 싸움’ 쯤으로 여길 수 있지만, 한우고기라는 품목의 특수성과 한우산업의 농가구조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 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우는 우리 입맛에 맞는 우수한 형질을 가진 고유품종으로 그동안 수입산 쇠고기와 차별화할 수 있는 ‘고품질 쇠고기’의 이미지를 지켜나가고 있으며, 국민들 또한 그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에 다른 육류에 비해 비싼 가격임에도 큰 저항감 없이 소비하고 있다. 한우의 품질은 그냥 유지되는 게 아니다. 농가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동안 쌓아 온 사육기술로 매일 소와 얼굴을 마주하며 정성껏 사육하고 있기에 그만큼 품질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투입된 자본에 대해 최대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논리로 한우를 사육했을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이와 관련 전국한우협회 황엽 전무는 “FTA(자유무역협정)의 경우 관세 인하 문제이므로 어렵긴 하지만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는데 대기업이 한우산업에 들어올 경우 농가처럼 섬세한 관리가 안 돼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수한 성적을 올리는 농가들을 보면 소와 사람과의 친밀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대기업의 위탁농가들이 키울 경우 일제시대 소작농들이 수확에만 급급하고 토지를 보존하지 않았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다른 문제점은 한우사육기반 붕괴다. 2014년 기준 한 육우 사육농가는 10만 4천 호로 전체 축산농가 10명 중 9명이 가족농 형태로 한우를 키운다. 그런데 한우산업이 대기업 계열화에 종속될 경우 이들 대부분은 토지와 자금을 저당 잡혀 살아가는 노동자로 전락하게 된다. 건국대 윤병선 교수는 “한우산업이 계열화될 경우 농가는 판로 확보라는 장점을 얻을 순 있지만 축사시설이나 설비 등의 부담은 농가가 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경상대 장상환 교수는 “대기업이 노동자를 고용하게 되면 이들의 복지도 책임져야 하고 위험도 기업이 감내해야 하지만, 부분적으로 자본을 대는 축산 위탁사육은 그런 부담을 농가에게 떠넘기고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혜택은 기업이, 축산 비용은 농가의 몫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타 산업의 계열화 형태를 보면 위탁수수료 협상 또한 원활치 않아 생산비는 절감되더라도 농가 소득은 그대로인 경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고, 한우산업이 호황에서 벗어나 불경기로 진입할 때 타산이 맞지 않아 기업이 철수를 하거나 외국 업체에 매각을 할 경우 ‘식량 안보’의 위협까지도 직면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대기업 축산진출 막고
한우농가를 보호하는 방안은?

그렇다면 이 같은 대기업의 한우산업 진출방안을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지난 국회토론회에서도 논의된 것처럼 법적으로 아예 대기업 진출을 막거나 규제를 강화해 진입을 어렵게 하는 방법, 계열화 방식과 내용을 규제함으로써 농가들의 자주성을 유지시키는 방법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법적 규제 방법은 2010년 폐지됐던 대기업의 축산업 참여제한 조항을 다시 부활시키는 것으로, 지난해 김우남 의원(새정치민주연합, 제주시을)이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본회의에서 부결되고 말았다. 대기업의 진출을 어렵게 만드는 방법으로는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를 농업부문에 도입해 직접 생산을 제한 또는 축소하거나 상생 방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박민수의원이 영향평가서 및 농어업인 상생협력계획서를 제출케 하는 농어업·농어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일정 사육규모 이상은 기업농으로 분류해서 각종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도 대기업의 축산진출 속도를 늦추는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김홍길 전국한우협회장이 “대기업은 이윤을 위해 축산을 하고 농가는 생존을 위해 하는 만큼 가축전염병으로 가축을 살처분 할 때 대기업과 농가에 주는 보상금에 차이를 둬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계열화가 이뤄진 이후라면, 계열화 주체와 농가간 합리적인 표준거래약관을 정하고 이를 이행했는지 정부기관과 농민단체가 모니터링 해서 불이행시 강력하게 제제할 필요가 있다.

 

농축협 위탁사육 확대,
대기업에 길 터주는 꼴

한우농가들은 농축협의 생축장 용도변경, 위탁사육 확대 역시 대기업의 계열화사업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물론 농가들 중에는 가격이 크게 오른 송아지를 입식하기 어려워 위탁사육을 자진한 농가들도 있고, 조합의 경우 브랜드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위탁사육을 늘린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규모가 너무 커졌다는 것이다. 생축장과 위탁사육을 포함해 현재 농축협에서는 6만두 정도를 사육하고 있고 이중에는 1개 단일조합에서만 6천두~1만두를 사육하는 곳도 있는데 이 경우 농협은 사료와 송아지를 대주고 농가가 키운 소를 수매해서 판매, 유통까지 담당하면서 소 한 마리당 월 1만7천 원에서 2만 원가량의 수수료를 지급하고 있다. 즉 소는 농가가 키우지만 소의 주인은 농가가 아닌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1월에는 한우협회 전북도지회가 주축이 된 전북농민단체연합회(대표 김석준)가 ‘대기업 농업진출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대기업 농업 진출과 농축협의 위탁사육 반대를 촉구하기도 했다. 전북지역의 위탁사육 규모는 2만여 두에 가까워 농축협 위탁사육 비중이 가장 높은 데다 전북 지역은 하림 등 축산 계열화기업들의 기반이기도 하다. 전북농민단체연합회는 농협이 이익을 내더라도 위탁사육 수수료를 올리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상환 교수는 “농축협이 농가에서 소를 구매해 팔지 않고 위탁생산 방식을 늘려가는 것도 일종의 계열화 방식이며 농민 지배가 심화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일진 전북도지회 사무국장도 “농협이 농민을 농업노동자로 전락시키고 탈농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농협이 하는 방식을 대기업이 그대로 차용해 한우산업에 진출할 경우 막을 명분이 없으며, 결국 농민이 빠진 한우산업 현장에서 농협과 대기업이 싸우는 형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 지역 농축협, 위탁에서 예탁으로
전환키로 협의 중

그렇다면 농축협의 위탁사업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이 바람직할까? 박일진 전북도지회 사무국장은 기존 위탁사업은 한 브랜드 당 1천 두 미만의 물량 수준으로만 가져가고 현재의 위탁사육은 대부분 예탁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탁이나 예탁 모두 자본을 농협이 댄다는 측면은 같지만 예탁에서 소유권은 농민이 가진다. 농협에서 농가들에게 소를 담보로 저리로 돈을 빌려주는 등 농가 스스로의 자립을 도와야 한다는 것. 또한 소와 관련된 수익 회계를 따로 관리하도록 규정을 바꿔 관련 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공평하게 재분배해야 하며 수수료 문제 또한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일진 사무국장에 따르면 전라북도의 경우 위탁사육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브랜드 유지를 위한 최소 수준의 공급물량만 확보하는 안을 놓고 농협지역본부와 긍정적인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전북도 내 지역축협의 경우, 전체 두수를 위탁에서 예탁으로 전환키로 하고 이미 실행에 나섰다고 밝혔다.

 

잇달아 체결된 FTA로 인해 10년 후면 시장이 완전히 개방되는 상황에서 대기업의 수직계열화와 대기업 자본의 생산기반 잠식 우려로 한우농가들의 시름 또한 더욱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 조합원인 농민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농협이 먼저 나서서 위탁사육을 늘리고 농가들을 ‘임금노동자’로 만드는 것은 올바른 사업방향이 아니다. 이와함께 한우산업의 대기업 진출은 한우농가 10만여 명의 삶의 터전이 달린 문제이니만큼 축산업계가 합심해 반드시 막아내야 할 큰 숙제라고 할 수 있다.